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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컬렉터/전시회

한국에서 두번째 전시 - 베르나르 뷔페 전 (2024년 8월)

by earth rotation 2024. 9. 15.

오랜만에 찾은 한가람미술관.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의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가 한참 진행 중이었고,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했음에도 관람 중엔 줄을 서야했다.

 

그 관람을 마치고 나왔더니, 딱 보이는 포스터 - 베르나르 뷔페의 광대 그림.

여기까지 온 김에 가볼까 하고 방문했던 것이 나의 또다른 인생 전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베르나르 뷔페" 라는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베르나르 뷔페가 젊었을 때 그려온 정물화부터 풍경화까지.. 뷔페 특유의 날카로운 검은 색 선이 많이 사용된 작품들은 이로 인해 인물, 풍경, 사물 등이 외부와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서 그런지 내게 강렬한 이상을 주었다.

 

아쉽게도 전시장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나는 전시가 끝나고 나서 작품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풍경화로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펜싱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그랑팔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실제 그림을 사진 찍지 못하고 이렇게 인터넷에서 찾은게 아쉽다. 실제로 그림 가까이에서 보면 검은 선으로 날카롭고 세밀하게 건물과 구조물을 표현한 것이 강렬하다.

파리 그랑팔레

 

전시 거의 초반에 배치되어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제목은 "가오리와 물병" 이다.

이런 식으로 죽은 생물과 일상 소품을 같이 그린 그림이 꽤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오리와 물병

 

광대 연작을 그렸던 뷔페. 이 전시회의 메인 그림도 아래의 광대 그림이다.

"광대는 자기 얼굴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베르나르 뷔페의 뮤즈이자 소울 메이트, 아나벨.

실물과 닮았다!

 

베르나르 뷔페는 그림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파킨슨병 판정을 받은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판단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데, 그 방식도 본인의 그림만큼이나 극적이고 강렬하다. 아래는 파킨슨병 판정 후, 방에 틀어박혀서 그렸다는 죽음 시리즈 중 하나. 여러 모습과 자세의 해골이 등장한다.

 

뷔페의 소울메이트인 아나벨은 아래 "브르타뉴의 폭풍" 그림을 보고 집안에 있는 날카로운 물건을 모두 치웠다고 한다. 그림을 보고 남편 뷔페의 결심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 같다.

 

어렸을 적,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갔던 브르타뉴의 바다를 그린 그림. 하늘은 어둡고 검은 새들이 날아다니며, 폭풍우가 몰아쳐 성난 파도는 절벽을 때리고 있고, 노란 색의 작은 배는 바다 위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성난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 느껴진다.

 

나 역시도 전시장에서 봤을 때, 가장 강렬함을 느낀 그림이었다. 마지막 전시 작품이었고 사진이었는데도 감정적인 타격감이 어마어마 했다. 그만큼 이 그림에선 아주 격정적인 감정의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뷔페는 1999년 어느 날, 아나벨과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한 뒤, 작업실에 들어간 뒤 얼굴에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고 삶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 비닐봉지에는 그림처럼 본인의 서명이 있었다고. 점점 굳어가는 몸으로, 자신의 삶의 유일한 도피처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됨을 느끼면서 뷔페는 최후의 결심을 한 것이다. 전시장에선 뷔페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그림을 그리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피카소도 그의 재능을 시기질투한, 이른 나이에 성공한 천재라는 타이틀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전시지만 마무리는 매우 엄숙했다.

브루타뉴의 폭풍

 

전시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있던 장미꽃 조화 한 송이.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아내 아나벨에게는 장미꽃 한 송이를 남겼다고 한다. 뷔페의 마지막 디테일까지 반영한 완벽한 전시였다!

 

일본에는 베르나르 뷔페의 미술관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가보고 싶다.

다시 한국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그리고 외국 여행 시에도 그의 그림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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